좋은 삶/좋은 그림

밀레 <이삭줍기>

~~^^*~~ 2011. 4. 30. 10:09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줍기>

장 프랑수아 밀레 [ Jean Francois Millet ]

1814-1875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농촌의 고단하고 열악한 일상의 삶을 관찰자 입장에서 그린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농촌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 때 쉘부르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는 1837년 파리로 유학해 들라로슈의 제자가 됐다.

푸생, 샤르댕, 도미에 등에 영향받은 밀레는 1848년 살롱전(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던 미술 전람회)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였는데, 이 작품은 밀레가 최초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1849년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밀레는 이후 농민의 고통과 노동의 신성함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옮겼다. '이삭줍기' '만종' 등의 걸작이 이 시기 작품이다.

1860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한 밀레는, 이후 풍경화에 매료되어 고향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한다.

1867년 만국박람회의 「밀레 회고전」은 대성황을 이루며, 밀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국가 훈장)을 받는다. 밀레는 쿠르베와 더불어 사실주의 대가로 꼽힌다. 또한 코로, 쿠르베 등과 함께 바르비종파를 창시했다.

바르비종의 생가는 현재 '밀레 기념관'으로 보존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밀레의 작품은 모네, 피사로, 반 고흐, 세잔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밀레는 만년에 인상주의와도 관계를 가졌으나 기존 작가와는 기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주요 작품은 '씨 뿌리는사람'(1850년작) '이삭 줍기'(1857년) '만종'(1859년) '자비심'(1859년)' '괭이질하는 사람'(1861년) '양치기 여인'(1863년) 등이 있으며, 이중 밀레의 3대 걸작이라 하면 '만종' '이삭 줍기' '자비심(LA CHARITE)'을 일컫는다.

 

<이삭줍기>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나이 든 세 농촌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앞부분은 농촌의 실제 생활을, 뒷부분은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인 농촌을 그렸다.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란스러움은 멀리 원경으로 밀려나 있으므로 화면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어 세 사람의 모습에서는 엄숙함까지 느껴진다.

두 여인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고, 한 여인은 자신이 모은 이삭들을 간수하고 있다. 시선은 오른쪽 끝 여인에게서 왼쪽의 두 여인에게로 부드럽게 흘러가서 세 사람을 한 무리로 파악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엷은 구름이 낀 하늘 아래 높이 쌓인 수확물들이 길게 늘어져 고전적인 풍경을 이루고, 오른쪽 건물 앞에는 말에 탄 지주가 일꾼들을 지켜보고 있다.

밀레는 퐁텐블로 숲 근처의 샤이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추수하면서 땅에 흘린 이삭을 주워 가져가는 것은 당시의 농촌 사회에서 널리 인정된 권리였다.

노르망디의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가난한 생활을 했던 밀레는 과장하거나 감상도 섞지 않고,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당시 비평가들은 농민의 모습만을 계속 그리는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였으며, 1857년 살롱에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도 농사 일을 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표현되었다거나 '하층민의 운명의 세 여신'이라는 비평을 받았다. 밀레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에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으며,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인간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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